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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

울릉도와 독도,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땅’의 증거들

울릉도와 독도,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땅’의 증거들

동해의 외딴 섬, 독도(獨島). 매년 외교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반복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독도가 과연 누구의 땅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합니다.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입니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이어지는 문헌과 고고학적 기록은 독도가 단순한 바위섬이 아닌, 오랜 세월 우리 조상들이 인식하고, 관리해 온 실질적 영토였음을 명확히 증명합니다.

 

울릉도와 독도,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 땅’의 증거들

 


📌 고대 삼국시대, ‘우산국’의 존재

독도와 울릉도는 삼국시대 당시 **우산국(于山國)**이라는 독립된 정치체로 존재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지증왕 13년(512),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키다.”

이는 신라가 우산국을 정복하고 울릉도와 그 부속 섬들(즉, 독도 포함)을 국가적 통치 영역에 편입했음을 의미합니다. 이사부는 ‘나무 사자로 위협해 투항을 받아낸’ 일화로도 유명하지만, 핵심은 이 시점부터 독도가 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관리체계에 들어왔다는 점입니다.


📌 고려·조선 시대의 문헌 증거

고려시대 문헌에서도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언급됩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서 날씨가 맑으면 서로 볼 수 있다.”

이는 두 섬이 하나의 생활·행정권역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문장입니다. 또한 1696년 안용복 사건에서도 그는 일본의 어부들에게 독도는 조선 땅임을 주장하며 일본에 건너가 항의했고, 당시 일본 막부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땅임을 인정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 고지도와 지도상의 증거

조선 후기부터 제작된 다수의 **고지도(古地圖)**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명확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 《팔도총도》: 울릉도와 함께 ‘于山島’(독도) 표시
  • 《동국대지도》: 울릉도 동쪽에 위치한 섬으로 독도 표시
  • 일본의 《죽도고지도》(18세기): 독도를 조선의 영토로 명시

이러한 지도들은 단순한 참고용이 아니라, 당시의 실효적 지배를 시각화한 역사 사료로 국제법적 효력도 가질 수 있습니다.


📌 고고학적 단서와 생존 기록

최근 고고학적 연구와 민속학 조사에서도 독도에 관련된 다수의 어민 활동, 조업 기록, 생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독도를 ‘별도어장’으로 이용했고, 일제강점기 전까지도 꾸준한 출어·채취 활동이 있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 독도에 거주하던 독도 주민들의 사진과 문서, 일제강점기 수탈 기록 등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입니다.


📌 국제법적 지위: 실효적 지배의 핵심

현재 대한민국은 독도에 경비대 주둔, 등대 운영, 기상 관측, 행정 구역 편입(경상북도 울릉군 독도리) 등을 통해 명백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제법상 영토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일본이 주장하는 “영유권”은 실제적, 법적 근거 없이 역사를 왜곡한 주장에 불과합니다.


✅ 결론

독도는 512년부터 이어진 1,500년 이상의 우리 역사 그 자체입니다. 신라가 통치하고, 고려와 조선이 지도에 표기하며, 어민들이 생업을 이어오고, 오늘날 우리가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영토 주권의 상징입니다.

이제 독도는 단순한 외교 이슈가 아닌,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지켜야 할 역사적 자산입니다. 바다를 마주한 작은 섬이지만, 그 위에는 조상의 시간과 후손의 의지가 함께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