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을 지킨 '조선어학회'의 투쟁
한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의 목숨 건 투쟁은 오늘날 우리의 언어와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자.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는 목숨을 걸고 한글을 지켰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조선어사전 편찬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긴다.
한글이 탄압받던 시대, 조선어학회가 등장하다
일제강점기(1910~1945)는 단순한 식민 통치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인의 언어, 문화, 정체성이 송두리째 부정되고 탄압되던 암흑기였죠.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는 조선어 교육 금지, 신문·잡지 검열, 창씨개명, 일본어 상용 강요 등 언어 말살 정책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등장한 조직이 바로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입니다.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한글과 조선어의 표준화·보존·보급을 위해 싸웠습니다.
조선어학회의 설립 배경과 목적
조선어학회는 1931년, 당시 학자들이 주도하여 설립한 민간 언어 연구 단체입니다. 그 전신은 1921년의 ‘조선어연구회’였으며, 이 조직이 확대 개편되며 조선어학회로 발전했습니다.
조선어학회의 핵심 목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 한글 맞춤법 통일
- 조선어 문법 체계 정립
- 표준어 사전 편찬
- 민족어 교육의 기반 마련
이들은 일제가 조선을 동화시키기 위해 추진하던 일본어 교육 강화 정책에 맞서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지식인들이었습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의 의미
조선어학회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1933년 발표된 **‘한글 맞춤법 통일안’**입니다.
당시까지도 조선어는 지역마다 발음과 표기가 달랐고, 문학작품이나 신문에서도 맞춤법이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학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규칙을 정립했습니다:
- 받침 표기 기준 정립
- 된소리·거센소리 구분 기준
- 띄어쓰기 원칙 확립
- 단어별 철자 기준 마련
이 통일안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맞춤법의 뼈대가 되었으며, 국어교육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조선어학회사건: 일제가 두려워한 언어 독립운동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단순한 학술활동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이들이 한글을 보존하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는 것을 민족 독립운동으로 간주했습니다.
결국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주요 회원 33명을 체포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조선어학회사건’**입니다.
이들 중에는:
- 이윤재: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
- 최현배: 모진 고문을 견디고 해방 후까지 활동
- 김윤경, 권덕규, 이희승 등: 조선어사전 편찬 주역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았지만,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말 없는 저항’은 한국 독립운동사의 한 축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선어사전 편찬의 의미
조선어학회의 또 하나의 큰 업적은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입니다.
1930년대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당시 수만 개에 달하는 우리말 단어를 수집하고 정의하는 방대한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어학회사건 이후, 이 사전은 일제에 의해 몰수되고 작업도 중단됩니다.
해방 이후, 살아남은 학자들이 이 작업을 이어 받아 1947년 ‘큰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게 되며, 이는 오늘날의 표준국어대사전의 뿌리가 됩니다.
조선어학회의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는 다시 활동을 시작하며 1949년 ‘한글학회’로 개칭하게 됩니다.
이 단체는 지금도 대한민국 국어학 연구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으며, 한글날 기념 사업, 국어학 연구, 국어 교육 정책 제안 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단순한 언어 보존 운동이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독립운동이었음이 역사적으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기억해야 할 이유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게 한글을 읽고 쓰며 말합니다.
하지만 이 언어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어학회와 같은 이들의 피와 땀, 그리고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단지 글자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이자 정체성입니다.
그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싸운 조선어학회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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