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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이야기

고려에도 '화폐경제'가 존재했다? 활구와 건원중보의 의미

 

고려에도 '화폐경제'가 존재했다? 활구와 건원중보의 의미

고려는 단순한 농업 국가가 아닌, 활발한 상업 활동과 더불어 '화폐경제'의 씨앗을 틔웠던 시기입니다. 특히 독특한 형태의 은화인 '활구(闊口)'와 국내 최초의 철전인 '건원중보(乾元重寶)'의 등장은 고려가 근대적인 경제 시스템을 지향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 시대의 화폐경제와 활구, 건원중보의 의미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고려화폐
고려화폐


1. 고려, 화폐경제의 싹을 틔우다: 주전도감의 설립과 초기 노력

고려는 건국 초기부터 국가 재정 확립과 상업 진흥을 위해 화폐 발행의 필요성을 인식했습니다. 996년(성종 15년), 고려는 화폐를 주조하고 유통을 장려하기 위해 주전도감(鑄錢都監)을 설치했습니다. 이는 화폐 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려 했던 왕실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당시 농업 중심 사회와 백성들의 낮은 화폐 인식으로 인해 초기 화폐 발행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2. 고려의 야심 찬 주화, 건원중보(乾元重寶): 국내 최초의 철전

화폐 유통의 어려움 속에서도 고려는 996년, 당나라의 건원중보를 본떠 국내 최초의 철전(鐵錢)인 건원중보를 주조했습니다.

  • 재질과 형태: 철로 만들어진 둥근 모양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는 전형적인 동전 형태였습니다.
  • 유통의 한계: 철전은 무겁고 운반이 불편했으며, 물가가 낮았던 당시 경제 상황에서는 효용성이 낮았습니다. 결국 발행 몇 년 만에 거의 유통되지 않게 됩니다.

건원중보는 비록 실질적인 유통에는 실패했지만, 고려가 주체적으로 화폐를 발행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3. 고려의 독창적인 화폐, 활구(闊口) 또는 은병(銀甁): 국제 화폐의 꿈

건원중보의 실패 이후 고려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바로 독특한 형태와 높은 가치를 지닌 활구(闊口), 또는 은병(銀甁)의 등장이었습니다.

  • 독특한 형태: 병 모양을 닮았으며, 그 형태가 우리나라의 지형을 본떴다고 전해집니다.
  • 재질과 가치: 순도 높은 은(銀)으로 주조되었으며, 쌀 15~16석에 달하는 고액 화폐였습니다.
  • 주요 사용처: 높은 가치 때문에 주로 고액 거래, 대규모 상업 활동, 외국과의 교역에 사용되었습니다.

활구는 순도 높은 은으로 국제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국제 화폐로서의 가능성을 지녔습니다. 또한, 중국 화폐를 모방했던 건원중보와 달리 독창적인 형태를 가졌다는 점에서 고려의 문화적 자부심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높은 액면가와 한정된 발행량으로 인해 보편적인 화폐로 자리 잡지는 못했습니다.


4. 고려 화폐경제의 발전과 상업의 성장

고려 시대에는 비록 화폐 유통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상업 활동은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 도시와 시장의 성장: 개경, 서경 등 주요 도시에 시전(市廛)이 발달하고, 지방에도 장시(場市)가 열렸습니다.
  • 상업 조직의 발달: 객주(客主), 여각(旅閣)과 같은 상업 조직이 상품 유통과 금융 활동을 담당했습니다.
  • 대외 교역의 활발함: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碧瀾渡)는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했으며, 활구와 같은 고액 화폐의 사용을 촉진했습니다.

5. 고려 화폐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고려의 화폐경제는 비록 완벽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 시도 자체만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 자주적 경제 시도: 독자적인 화폐를 발행하여 자주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고려의 노력을 보여줍니다.
  • 경제 발전의 노력: 화폐 발행 시도는 고려 왕실이 경제 발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했음을 증명합니다.
  • 역사 속 혁신의 흔적: 활구와 같은 독창적인 화폐 형태는 고려의 창의성과 문화적 역량을 대변합니다.

결론: 고려, 화폐의 꿈을 꾸다

고려는 단순한 물물교환을 넘어선 '화폐경제'의 꿈을 꾸었던 역동적인 시대였습니다. 건원중보와 활구의 발행은 고려 왕실이 국가 재정 안정과 상업 발전을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의 노력은 우리 역사 속에서 화폐경제의 씨앗을 뿌린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고려의 화폐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경제 활동과 국가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