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이야기

경주, 동양의 로마였던 이유 – 천년 수도가 남긴 세계적 도시 유산

 

 

경주, 동양의 로마였던 이유: 천년 수도가 남긴 세계적 도시 유산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 도시 경주(慶州)는 단순히 '신라 천년의 수도'를 넘어, '동양의 로마'로 불릴 만큼 고도로 체계화된 도시였습니다. 도시 인프라, 정치와 종교의 중심성, 국제성, 문화 예술의 집약도 등에서 세계적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오늘은 경주가 왜 단순한 옛 도시가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급 수도'였는지를 분석합니다.

 

 

천년의 수도 경주
천년의 수도 경주


1. 천년 수도의 위상과 도시 계획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 신라 멸망까지 약 1,000년간 수도로 기능했습니다. 이는 고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로, 경주가 그 긴 시간 동안 정치, 종교,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일관되게 수행했음을 의미합니다.

고고학 및 문헌 자료에 따르면, 경주는 철저한 도시 계획에 따라 설계된 행정 도시였습니다. 중심에는 황룡사, 월성, 첨성대 등이 위치한 왕경(王京)이 있었고, 주변에 6부 행정 구역이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체계적인 도로망과 정교한 행정 문서 체계(목간)는 경주가 고도로 정비된 도시였음을 증명합니다.


2. 불교와 국제 교류의 중심지

경주는 동아시아 불교 문명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습니다. 불국사, 석굴암, 황룡사 등 수많은 대형 사찰들은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닌 문화와 사상의 중심지였습니다. 특히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의 정치적 이상과 불교적 세계관을 통합한 상징 건축물이었습니다.

또한 경주는 해상 실크로드의 동단 거점으로서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했던 개방형 도시였습니다. 당나라, 일본, 중앙아시아, 심지어 페르시아계 물품까지 출토되는 것은 경주가 단순한 내향적 왕도(王都)가 아니라, 글로벌 도시로서 기능했음을 의미합니다.


3. 예술과 과학이 꽃핀 도시

경주는 예술과 과학의 집약지이기도 했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는 왕이 하늘을 관측하며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장치였습니다. 또한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불상, 금속 공예, 석조 예술 등은 신라의 뛰어난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마무리하며

경주는 단지 옛 왕국의 수도가 아닙니다. 고도로 계획된 정치 행정 도시, 불교 문명의 핵심 거점,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심지, 예술과 과학의 발전지였습니다. 그 복합성과 구조는 로마 제국의 수도와 비견될 정도로 고도화된 문명 도시였습니다.

경주를 단지 '수학여행지'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천년 수도이자 동양의 로마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조명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