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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고구려를 넘어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외교 유산 발해, 고구려를 넘어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해동성국(海東盛國)의 외교 유산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발해가 고구려의 정신과 문화를 계승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지만, 발해는 단순히 고구려의 후예를 넘어 동북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독자적인 외교력을 발휘하며 강대국으로 우뚝 섰던 '해동성국(海東盛國)'이었습니다. 당나라, 일본, 흑수말갈 등 주변국들과 활발한 외교 관계를 맺으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끌었던 발해의 외교 유산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1. 고구려 계승을 넘어선 독자적인 정체성 확립: 발해의 건국과 초기 외교발해는 698년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연합하여 건국한 나라입니다. 대조영은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고, 고구려 .. 더보기
한양 도성 밖 ‘성저십리’ – 조선 서민들의 삶이 숨 쉬던 공간 한양 도성 밖 '성저십리': 조선 서민들의 삶이 숨 쉬던 공간조선 시대 수도 한양은 '도성(都城)'이라 불리는 성곽 안에 정치, 권력, 문화의 중심지가 집중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조선 사람들의 일상이 모두 도성 안에서만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성 바깥, 즉 성 밖 10리(약 4km) 이내 지역인 '성저십리(城底十里)'는 조선 백성들의 삶이 역동적으로 펼쳐진 또 하나의 한양이었습니다. 성저십리란 무엇인가?'성저십리'는 말 그대로 도성 아래(성저), 10리 거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거리 개념을 넘어서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공간적·사회적 계층 구획의 경계였습니다. 도성 안이 왕실, 양반, 중인들의 거주지였다면, 성저십리는 상인, 수공업자, 천민, 농민이 집중된 도시 외곽 생활권이었습니다.성저십.. 더보기
경남 산청 '황매산' — 동학농민운동의 또 다른 격전지 경남 산청 '황매산': 동학농민운동의 또 다른 격전지철쭉과 억새로 유명한 아름다운 산, 황매산(黃梅山)이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의 중요한 격전지였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이 평화로운 산은 당시 피의 전장이었으며, 산청 황매산 일대는 동학군이 조직적인 저항을 펼쳤던 숨은 거점이었습니다.1. 동학농민운동의 확산, 그리고 산청1894년 전봉준이 주도한 고부봉기로 시작된 동학농민운동은 전라도를 넘어 경상남도 일대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산청은 경남 북부의 교통 요지이자 동학의 교리와 조직이 이미 깊이 퍼져 있던 곳으로, 동학군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습니다.2. 황매산 전투: 민중의 저항이 깃든 땅1894년 가을, 진주성에서 밀려난 동학군 수백 명이 황매산에 재집결하여 일본군 및 관군과 접전을 벌였습니다. 험준한.. 더보기
고려 대몽항쟁의 마지막 보루, 강화도 온수리 – 민초들의 피와 의지로 지켜낸 땅 고려 대몽항쟁의 마지막 보루, 강화도 온수리: 민초들의 피와 의지로 지켜낸 땅13세기, 고려는 몽골의 침략이라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에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는 결단을 내렸고, 그 중심에 **온수리(溫水里)**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온수리는 단순한 행정 구역이 아닌, 고려왕실의 피난처이자 최후의 항전 기지였으며, 수많은 민초들의 피와 땀이 깃든 공간이었습니다.1. 강화도 천도와 온수리의 등장1232년, 고려는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했습니다.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도는 몽골 기병이 접근하기 어려운 천연 요새였으며, 이는 지형적 이점을 활용한 장기전 전략이었습니다.온수리는 강화도 내에서도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왕실의 거처와 관료 조직이 자리 잡으면서.. 더보기
한글 이전,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 이두와 향찰의 문자 생활 한글 이전,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이두와 향찰의 문자 생활1443년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이전,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했을까요? 공식 문자인 한자 외에,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는 **이두(吏讀)**와 **향찰(鄕札)**이라는 독특한 문자 체계가 존재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한글이 없던 시절 **조선의 문자 생활**을 조명하며, **이두와 향찰의 탄생 배경, 사용 방식, 사회적 의미**를 살펴봅니다.1. 이두(吏讀)란 무엇인가?: 관청의 공식 한자 변형 표기법**이두(吏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조선어(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자 체계입니다. 주로 **관청 문서, 행정 기록, 법령 전달** 등에 사용되었으며, 말단 관리나 지방 관청의 하급.. 더보기
고려 시대 여성들의 사회 활동: 대장경 제작과 여성 후원자들 고려 시대 여성들의 사회 활동: 대장경 제작과 여성 후원자들고려 시대는 불교가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시기였습니다. 특히 국가적인 불사(佛事)였던 팔만대장경 제작 과정은 불교 신앙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협력 속에서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여성의 활발한 참여는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고려 여성들은 후원자, 기부자, 기록자로서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불교와 여성의 접점: 고려 사회의 구조적 특성고려는 성리학이 지배하기 이전의 사회로,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습니다. 호적에서 모계 중심의 기록 방식, 여성의 재산권 인정, 재가(再嫁)에 대한 관대한 태도 등은 고려 여성들이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불교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더보기
향가, 노래 속에 피어난 불심: 신라 민중의 삶과 불교적 세계관 엿보기 향가, 노래 속에 피어난 불심: 신라 민중의 삶과 불교적 세계관 엿보기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문학 장르, 바로 **향가(鄕歌)**입니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향가는 그 독특한 표기 방식만큼이나 신라 사람들의 다채로운 삶과 깊은 정신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많은 향가 작품 속에는 당시 신라 사회를 지배했던 불교적 세계관이 깊이 스며들어 있으며, 불교가 어떻게 민중의 일상과 감정에 뿌리내렸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단순히 시(詩)를 넘어, 신라 시대의 사상과 민중의 애환이 응축된 향가의 세계로 들어가 불교적 세계관과 민중의 삶이 어떻게 어우러졌는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향가란 무엇인가: 신라인의 혼을 담은 노래향가는 신라 시대에 불린 우리 고유의 정형시로, 신라 향.. 더보기
양반도 울고 갈 평민들의 입담: 조선 시대 '야담(野談)'에 담긴 민중의 삶과 풍자 양반도 울고 갈 평민들의 입담: 조선 시대 '야담(野談)'에 담긴 민중의 삶과 풍자오늘날의 소설처럼, 조선 시대에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큰 인기를 끌었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바로 **'야담(野談)'**인데요. 야담은 정사(正史)에 기록되지 않은 민간의 이야기로, 평범한 서민들의 삶과 해학, 그리고 기발한 풍자가 담긴 구비 문학의 한 형태였습니다. 오늘은 **조선 시대 서민들의 '야담'**이 무엇이며, 그 안에 담긴 민중의 삶과 풍자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1. 야담, 왜 '야(野)'라는 이름이 붙었을까?**'야담'**은 한자 그대로 '들 야(野)'에 '이야기 담(談)'을 씁니다. 여기서 '야(野)'는 비공식적이고, 정통에서 벗어난, 또는 민간의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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